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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요지 - 4.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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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장사 작성일05-01-08 15:35 조회1,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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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요지
虛雲스님 강설 / 大圓 한글역



참선수행의 방법


우리가 공부해야 할 법의 문은 많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참선으로써


위없는 미묘한 문으로 삼으셨다.


 
능엄회상에서 부처님은


문수보살에게 원통(圓通-불보살이 깨달은 경계)을


선택할 것을 가르치실 때에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으로써 으뜸을 삼으셨다.





우리는 들음을 돌이키어 자성(自性)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참선이며 이 안에 선방[禪堂]이 있다.


이제 참선법을 설명하겠다.




① 좌선(坐禪)이란


우리가 평소에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도(道)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이니


어느 곳인들 도량(道場) 아닌 곳이 있겠는가?




본래 어떠한 선실도 소용되지 않으며,


앉아야 비로소 참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선실이니 좌선이니 하는 것은


우리와 같은 장애가 깊고 지혜가 얕은


말세의 중생을 위해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좌선을 할 때에는 몸과 마음을 잘 조절하고 길러야 한다.




만약 잘 조절하지 못하여 부족하면 병에 걸리게 되고,


지나치면 마(魔)가 붙게 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방에서 향을 들고 경행(經行) 하는 것과


자리에 앉아 앞에 향을 피우는 것은



몸과 마음을 조절하려는 데에 그 뜻이 있다.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은 이 밖에도 많으나


중요한 것만을 가려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가부좌를 할 때에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지 말고


자연스럽게 바로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기(火氣)가 위로 올라가 나중에 눈곱이 많아지고


입에서 냄새가 나며 기가 위로 솟구치고 입맛이 없어지는데


심할 경우에는 피를 토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리를 구부리거나 머리를 숙여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쉽게 혼침(昏沈)에 떨어지게 된다.


만약에 혼침이 온다고 느껴지면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한번 펴고 가볍게 엉덩이를 움직이면


혼침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공부를 지나치게 다그쳐서 마음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는


모든 반연(攀緣)을 놓아 버리고


공부까지도 놓아 버려라.




향이 반 마디 탈 때까지 쉬면 서서히 편안해질 것이다.




그런 뒤에 다시 공부를 일으켜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마다 쌓이고 달마다 누적되어


성품이 바뀌어 성미가 조급해 지고 쉽게 화를 내게 되며,


심할 경우에는 발광(發狂)을 하거나 마가 붙게 된다




좌선을 할 때 받게 되는 경계(境界)는 대단히 많기 때문에


이루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경계에 대하여 집착만 하지 않는다면


장애가 여러분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괴이한 것을 보고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그 괴이한 것이 저절로 물러나게 된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른 것이다.




비록 요망스런 마군이가 와서


그대를 뒤흔들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셔서


그대에게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실지라도 상관하지 말며,


기뻐하지도 말라.




능엄경에서 이르되


「거룩하다는 마음을 짓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좋은 경계라 한다.




만약에 거룩하다는 알음알이를 지으면


바로 모든 사도(邪道) 빠지게 된다」는 말은 이를 이른 것이다.




*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 손님과 주인을 인식하라




그렇다면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능엄회상에서 교진나 존자가


객(客)과 진(塵) 두 글자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바로 우리들 초심자가 공부를 시작해야 할 곳이다.




 교진나 존자는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마치 지나가던 손님이 객주집에 들려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데,


먹거나 자는 일을 마치면 행장을 차려 가던 길을 떠나며 머물지 않지만




주인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 것과 같다.




머물지 않는 것은 손님이요,


머무는 것은 주인이다.




또 비가 개고 밝은 해가 하늘에 떠서


햇빛이 틈새로 들어와 하늘이 밝으면,


허공에 있는 모든 먼지가 요동하는 것이 드러나지만




허공은 고요하다.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空)이요,




요동하는 것은 먼지[塵]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손님과 먼지는 망상(妄想)에 비유한 것이요,


주인과 허공은 자성(自性)에 비유한 것이다.




항상 머물러 있는 주인은


본래 손님이 가든지 혹은 오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항상 머물러 있는 자성은


본래 망상이 갑자기 일어나든 갑자기 사라지든


망상에 따르지 않는 것과 같다.




다만 스스로 온갖 일에에 무심하다면,




만물이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먼지는 저절로 요동하고 있으나


본래 맑고 고요한 허공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는 망상이 스스로 일어나든 없어지든


본래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는 자성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른바 『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이 가운데 손님[客]이라는 말은 비교적 거칠고-[거친 망상]


먼지[塵]라는 말은 비교적 세밀하다-[미세 망상].




초심자가 먼저 「주인」과 「손님」의 뜻을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자연히 망상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허공」과 「먼지」의 뜻을 명백하게 인식한다면


망상은 스스로 장애가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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